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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터키

터키 2일차 - 아야소피아(성소피아성당)

아야소피아라고도 하고 성소피아성당이라고도 하는 곳으로 향했다.


아야소피아 [Ayasofya]  / 성소피아 성당
[출처] 아야소피아 [Ayasofya ] | 네이버 백과사전
이곳이 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로 호칭되고 있을 때에 그리스도교대성당으로 지어졌고, 터키 지배 때에는 이슬람모스크가 되었고, 현재는 박물관으로 쓰인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성스러운 예지()’(하기아 소피아)에 바친 구당()(325) 대신에 537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의하여 새로운 구상으로 재건되었다. 안 길이 81m, 너비 70m의 광대한 3랑() 바실리카 플랜과, 지름 약 33m의 거대한 원개()를 교묘히 조합시킨 절충적인 원개 바실리카식 성당이다. 본당(nave) 중앙에 4개의 대지주를 세우고 그 위에 대형 아치와 펜덴티브 구법()에 의한 대원개를 덮고 있다. 동서의 긴 방향으로 가해지는 횡압()을 대소의 반원개()로 받치고, 남북 방향의 횡압은 대지벽()(563 증설)으로 받친 매우 독창적인 구조를 하고 있다.
설계자는 트랄레스의 안테미오스밀레토스이시도로스라고 하는데, 그들의 재능이 만들어낸 풍부한 내부 공간과 동산을 방불케 하는 장대한 외관을 보고 헌당식()에 참석한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감격하여 “오! 솔로몬이여! 나, 그대에게 이겼노라!”고 부르짖었다고 한다. 헌당 당시, 당내에 빛나고 있었을 6세기의 모자이크는 8∼9세기의 아이코노클래즘(성상 파괴운동) 때에 없어지고, 그 후에 제작된 모자이크도 15세기 이후, 이슬람교 투르크의 점거하에 거의 없어졌으나, 근년의 조사에 의하여 앞방[]과 2층 복도의 벽면에서, 석회칠 속에 그려져 있던 9∼13세기의 모자이크의 일부가 발견되어, 그 고도의 기술과 뛰어난 표현이 주목을 끌고 있다. 당내에는 대소의 주두() 조각으로 대표되는 비잔틴의 세련된 장식 조각들이 적지 않게 남아 있다. 


아야소피아.


오른쪽에 보이는 건물이 듣기론 경비실(?) 같은 역할을 했다나 뭐라나...


이제 들어가는거다...


벽화의 내용은 기억에 없고 오로지 플래쉬 터뜨리면 경찰이 카메라 뺏는다는 기억 밖에... ㅎㅎㅎ
플래쉬로 인해 벽화가 손상된다고 제지하는 곳들이 많았다.


저 항아리에는 총 4개가 있었으며 보물이 가득했단다. 농부가 밭에서 발견해서 술탄에게 받치고 항아리만 하나 보답으로 받았다고 한다.(째째한 술탄같으니...) 그래서 그중 2개는 아야소피아에 있으며 한개는 다른 곳에 있고 농부에게 준 마지막 하나는 행방을 알 수 없다나 뭐라나....


높이도 높이고 폭도 참 길어서 건축 당시 건축가가 아닌 기하학자가 설계하여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원판에 적혀있는 요상한 무늬는 뭘 뜻하는지 모르겠다.


여행내내 봤던 다른 곳들에 비해 그나마 이곳이 전등을 볼만하게 매달아놨다.
다른 곳은 정말 보기 싫을 정도라... -_-


왼쪽에 보이는 창이 건물의 중앙부분이다.
오른쪽으로 치우친건 성지방향으로 세우기 때문이란다.


멀리서 보면 얼마나 대칭적이지 못하게 세워놨는지 알 수 있다.


소원의 이뤄준다는 기둥인데 술탄이 현기증에 손을 대고 괜찮아졌다는 유래가 있다.


가까이 보면 하도 손을 대서 이상하게 생겨버렸다. -_-
엄지손가락을 넣고 한바퀴 돌리는데 제대로 하려면 꼭 두발을 움직이지 않고 한바퀴를 돌려야 한단다.
지켜본 결과 98%는 발을 움직이면 안되는 줄도 모르고 하고 있었으며 1.5%는 돌리다 팔이 꺽여서 발을 움직이더란... ㅎㅎㅎ

내부는 운동장만하고 2충 규모로 되어 있다. (사실 더 있는데 못 올라간걸지도 모른다. -_-)


손상된 부분이 많은건 금으로 되어 있어서 십자군 원정때 벗겨갔다나 뭐라나....


아마 성모와 예수라고 생각되지만... 관심이 없는 관계로 사진만 찍고 패스.... ㅎㅎㅎ


아야소피아를 나와 이동중에 멀리 보이던 블루모스크... 나름 괜찮은 사진이 찍힌 듯 하다.. 다만 날씨만 조금 더 맑았어도 좋았을 걸 싶다.